도시가 스타트업을 위한 투자 허브와 창업 인프라로 재편될 수 있을까. 미래학자이자 스타벤처스 대표이사인 문지은 박사는 최근 기고문에서 서울의 한강과 용산을 청년·스타트업의 ‘기회 인프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 박사는 도시의 공정성이 같은 주소를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취업·창업·투자·글로벌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상승 이동의 사다리를 얼마나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봤다.

공공부지 매각 대신 장기임대·민관협력
문 박사는 공공소유를 유지한 채 장기임대, 기간형 사용권, 민관협력 방식을 활용해 용산 부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핵심 공공부지를 단기 개발수익으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옵션 가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용산에 입주 기간을 2~3년으로 정한 기간제 주거를 조성해 창업자들이 초기 자금 부담 없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로봇·바이오·콘텐츠 기업이 초기 비용을 낮추며 실험할 수 있는 공유 연구·제작시설도 함께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런던 나이츠브리지, 뉴욕 맨해튼, 도쿄 미나토구, 홍콩 피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고밀도 지역이 자산 축적의 상징으로만 소비되는 것과 달리, 용산은 이런 방식을 통해 실질적인 기회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자와 창업자가 상시로 만나는 허브
문 박사가 제안한 구상의 핵심은 창업자와 벤처캐피털·액셀러레이터, 대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상시 만날 수 있는 투자·오픈이노베이션 허브다. 그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액셀러레이터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자와 투자자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공간을 마련해 초기 창업 투자유치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해외 창업자·연구자·투자자가 국내에 정착해 사업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글로벌 창업 게이트웨이 조성도 함께 제시됐다. 문 박사는 사례로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F를 들었다. 스테이션F는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지원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세계적 창업 허브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KOSME)은 이곳에서 국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국 창업가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왔다.

한강도 문화·산업 기회의 플랫폼으로
문 박사는 용산뿐 아니라 한강도 문화·산업 기회와 연결된 도시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봤다. 한강과 용산을 공공자산이자 기회 인프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논지다. 이는 단순한 공간 개발이 아니라, 투자와 창업이 상시로 일어나는 생태계를 도시 단위로 설계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문 박사는 도시정책의 성과 지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택 공급량 같은 양적 지표 대신 ‘몇 개의 사다리를 만들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자와 창업자를 잇는 공간이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느냐가, 결국 도시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기여하는 방식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